유럽여행 98.4.16 -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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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두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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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 )
서글프고 미안한 마음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하는 안개 낀 오전. 눈물을 머금고 걱정 반, 근심 반 한 너의 얼굴에 나도 그만 눈물이 핑 돈다. 새벽 4:30까지 캠코더 battery로 씨름 하다가 2번씩이나 안양에 가서 dm size 알카라안을 사오고, 6:00 쯤에 눈떠서 어머니의 수북한 밥을 먹고 세수하고 나오니 6:20. 독산까지 bus, 6:50다되어서 공항bus를 탄다 (30분 걸림) 차비 500 + 4000원
싱가포르공항이 2시쯤인가 , 내리기 전에 기내에서 무료관광이 있다고 해서 new asia singapore tour의 안내소에서 무료 ticket을 받았다. 매시간(1시부터)마다 2시간의 시내관광이란다. 여권과 출국카드를 보관하고 2시간의 완전무료관광이었다. merlion동상까지 갔다오는 코스로서 동상 앞까지는 배로 이동하였다. 공항으로 돌아오니 6시50분(5시출발), 4시20분에 집합하여 이동함
그 이전에는 김포공항에서 산 film \20000어치 36방x3, 24방x3과 기내식을 싼 봉투를 잃어버렸다. 기내or화장실 잘 모르겠다. 1시간 넘게 기다렸고, 신고했으나 못 찾아서 그만 포기했다. 정신차려야지. 싱가포르 떠난 때가 저녁 10:50분, 8시쯤 배미애에게 kt카드로 전화(싱가포르의 갈아타는 곳은 동전 사용하는 전화가 없다) 무료관광을 하기 전에 서울에서 짐을 전부 아테네로 보낸 것이 조금 실수했다. 갈아타는 비행기를 함께 끊으면 짐은 목적지로 자동으로 가게된다. 싱가포르의 무료관광을 할 때에는 나갔다가 오기 때문에 공항에 다시 올 때에 출국세(공항이용료)를 내는 줄로 알고 환전을 했으나 필요 없는 것이었다. 먹을 것 만 준비하면 ok.아테네로 들어가기 10분전이라 비행기가 흔들린다. 지금시간(현지시간5:00am). 잠을 잘 때에는 2개 이상 빈자리에서 누워야지. 아테네가 어떤 모습일까. 배미애는 어떤 생각할까. 장모님은 떠나기 전에 김포에서 전화했는데 걱정하신다. 싱가포르의 공항의 슈퍼에서는 에너자이저가 s$5.0 2개(우리 돈 5000원, 안양에서는 3300원 이었는데 있으니 안심이 된다, 유럽에도 있겠지). 싱가포르->아테네 12시간쯤 비행기를 탄 것 같고, 떠나기 전에 우측창가에서는 지평선에 북극성이 있고, 국자가 거꾸로 뒤집혀진 모습을 보니 참. 싱가포르 떠날 때 기내식. 간식. 기내식 이렇게 3번 주더라 .sg항공은 기내 각 좌석에 vtr(lcd)가 있어서 좋았더라. 기내에서 잘 때는 반드시 누워서 자야한다 2자리만 있어도 누워 자라.
4월17일( )
오늘아침 5:30분 비행기가 아테네에 도착했다. 올 때는 맛 바람이 98km라니 지상속도가 780km 니 10%가 넘는 맛 바람을 받고 온 것이다. 무사히 도착하니 공항이 왜이리 썰렁하지. 광주공항정도 밖에 하지 않은 것 이닌가. 도착시간을 표시하는 표시기는 구식의 돌아가는 것이었고 8개씩밖에 표기가 안 되는 것이 한참 뒤떨어진 것 같았다. 화장실은 지하에 있더군. 오늘 돌아본 식당의 화장실도 모두 지하에 있으니 원. 그런데 넓었다. 환전관계는 us$당 311dr. 이었고 우리 돈으로 대략 1dr=5원쯤 되었다. 은행마다 창구가 있어서 국립은행의 커미션이 좋았다. eu국가와 아닌 국가의 차이를 두고 있었다. 김k,나 100$해서 200$을 바꾸어 커미션 523제하니 61850dr드라크마.
세관 통과 후에 보니 아까 그 환전창구가 또 있는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1개의 사무실을 반반씩 반대로 창구를 내서 쓰고 있었다. 타 은행에는 금액대비 커미션이 틀렸다. 소액의 경우 일반은행이 나을 것 같았다. 아테네 공항을 나오니 또 한번 썰렁. 책에서 본 공항bus비 160을 가지고 돌아다보니 오므니에 광장으로 가는 매표소로 가니 200dr이란다. 왜 160아니냐고 200dr이라고 하는 사이에 왠 bus가 오고, 오므니에 라고 쓴 것을 보고는 허겁지겁 bus ticket을 사려니까 bus에서 사라고 해서 올라타서 200 x 2=400dr을 주고 어디론가 10-15분쯤 가다보니 종점이란다. 6:50분쯤 bus에서 생각해보니 일반버스인 것 같았다. 100dr인데 우리에게 200dr을 받은 것 같다. 공항버스가 분명히 아닌데! ( 불괘의 시작이다). 내려서 잠시주위를 보니 왠 광장이 보이고 오므니에광장 인줄 알고 나침판을 대충 보고 가니 여기가 아닌데. 한참을 해매다 보니(1시간쯤). 종이 땡. 땡. 땡. 관광책자에 본 것이 교회에서 오른쪽이라고 한 생각이 들어 열심히 뛰어가니 교회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가니 Annabel hotel이 보이니 왠 횡제(하느님감사). 가격은 책에는 4인실이 1200dr 씩이나 예약이 밀렸다고 2인용 방을 2500 x 2로 쓰라고 해서 쓰고, 큰짐을 내려놓고 작은짐만 매고 나오니 이때가 막 10시. hotel에 220v 전기가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켐코더의 충전지를 장착하고 나서는데 아테네 길을 따라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향하여 go. 가는 길에 재래시장을 보니 왠 여자아줌마가 담배를 그렇게 파는지. 대놓고 파는데 육남매엄마를 보는 듯 하더라. 토마토, 감자, 딸기가 많이 있고, 포도는 따서 낱개로 수북히 담아 놓은 것 같았다. 아크로폴리스를 올라가니 아니 왠 사람이 이렇게 많은가. 알고 보니 오늘이 부활주일의 금요일-여기서는 good friday라서 12시부터 문을 연대나. 1시간을 뭐하니 하다가 여행정보를 얻을까해서 information center를 찾으러 간 것이 아주 중요한 화근이었다. 인포메이션센타는 오늘 문을 닫았고 오면서 zappion 이라는 깨끗한 건물을 보고 오다가 왠 사람이 위치를 물어서 가르쳐 주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자기가 경찰이라며 여권 같은 수첩을 보여주면서 자기가 경찰이다. 코카인 단속한다며 물어보는 사람에게 여권을 보여 달라고 하니 그 사람이 보여주며 우리에게도 보여달라고 하더라 여권을 복대에서 꺼내어 보여주니 복대내의 돈도 보여달라고 하며 김k이 보여주고 낱개로 세어서 다시 집어 넣었다. 나에게도 보여달라고 하기에 당신이 진짜경찰이냐 왜 보여달라고 하느냐 하면서 경찰서로 가자고 하니까 오히려 가자고 해서 의심을 안 했다. 돈을 세어서 다시 집어넣더니 센 돈을 김k에게 주고 여러 묶음으로 김k에게 넘기면서 김k이 돈을 떨어뜨리더라. 그놈이 일부러 떨어뜨린 것이고 이때에 내 돈 us$150과 프랑스800fr을 빼가져 버렸다. 호텔에서 확인해보니 빠진 것을 알고 황당했다. 우리가 계속보고 있어서 안심했는데 역시pro더라 우리가 바보지(황당한 마음) 찝찝한 마음으로 아크로폴리스에 입장료 2000 x 2를 내고 들어가면서 여자경찰관에게 물어보니 경찰표식은 그게 아니고 다른 거란다. 정복, 사복 같은 신분증이라며 보여주더라-이놈 나쁜 놈 우리가 큰일 날 뻔 했다고 했는데 큰일은 이미 당한 것을 어떡해.
아크로폴리스에서 입구, 파르테논신전, 또 다른 신전 등을 보고 나니 오후 2시,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한 것이 또 화근이었다. 스니온곳은 저녁때쯤 가야지 좋다고 해서 가까운 페레우스로 가기로 했는데(전철로 20분 소요) 기차가 와서 탔는데 김k이 먼저 안으로 들어가고, 내가 들어가니 앞에서 길을 막으며 싫어하는 사람2명이 있는데 그만 거기에 서있는 것이 화근이었다. 배낭이 뒤에 있어서 앞으로 메고 잠시 후에 사람들이 내리고 자리에 않아 보니 우측 바지주머니의 지갑이 행방불명. 털린 것이다. 유스카드와 us$12(비상금). 31,000dr정도가 있었는데 이 황당함이란. 정말 미치겠었다. 페리아스 에서도 차를 잘못 타고 쇼를 하는 바람에 그리스의 bus구분, 장거리blue,단거리green,티켓이 없으면 차내에서 교환하고, 없으면 그만 이라는 아줌마의 설명이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빙빙 돌다가 저녁 늦게 호텔에 돌아가서 돈을 세어보니 돈이 털린 것을 알았다. 이 황당함. 페리아스에서 떠날 때에 할아버지 3명이 자기 bus ticket을 준 것이 감사하고 bus를 잘 설명하고 우리에게 알려준 아줌마와 애기에게도 고마음을 느낀다. 도둑맞으라고 내논 내가 잘못이고 어리숙한 수작에 말려든 내가 잘못이지. 밤늦게 10시쯤 저녁을 먹으러 가는 도중에 경찰이 왜이리 많은지 보니 내 앞으로 행렬이 지나가는데 켐코더꺼내 찍다보니 내용을 잘 모르겠지만 고난 받아서 돌아가신 예수그리스도를 무덤으로 옮기는 의식 같았다. 정말 이건 큰 행운이었다. 털린 돈 60여만원과 주소와 유스회원증을 바꾸면서 잊어먹자. 오늘밤에 털린 것을 확인하면서 여행용전대를 실로 묶고 (핀 구부려서 잠구는 것)해서 앞의 2개를 앞에서 못 열게 하고 뒤에 구멍을 뚫어서 뒤에 들어가는 작크 속에 구멍을 내어서 2중으로 만들었다. 내일은 열쇠를 사야지. 배미애는 출근 준비하겠네. 지금 배미애시간은 8시25분. 잘 잘께 내일은 그리스를 1일 빨리 떠날 계획이다.
4월18일( )
오늘은 잠을 한잠도 못 잤다. 어제 돈 읽고, 사기 당한게 억울해서인지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7시쯤에 깨어나서, 밤새 생각한데로 지도를 구하러 다시 의사당 있는데 까지 가보니 police office가 없지 않은가. 주소를 확인하니 아크로폴리스옆으로 되어있어서 포기하고 맥도널드옆의 다른 회사의 fast food를 사 가지고 왔다. check-out(10:30) 하기 전에 어제 못한 eurail시각과 철도예약(to paras)을 위하여 짐을 놓고 갈 의향을 카운터에 물어보니 별도로 안전하게 무료로 맏아 준다지 않은가. 책의 내용과 틀리지 않았다. 걸어서 펠로포네소스역으로 와서 eurail의 시작을 알리고 소유자를 기입 받고 예약을 하러가니 앞의 할머니가 지갑을 놓고 간 것 같아서 할머니를 찾으러 가니 할머니가 오시더라. 이야기를 하니 할머니가 고맙다고 하시는 것 같은 때의 기분이란 참 좋다. 나쁜 놈은 극히 일부분이고 우리가 표적이 되었을 따름인 것 같았다. 좌석예약을 하니 9:30분쯤 되고 1시에 돌아올 때까지 시간이 남아서 조금 걸어가다가 버스표를 사고 버스를 타고 아까 왔던 맥도널드옆의 은행의 i 창구에서 지도를 받아 오니 왜 이리 좋을수가. 바로 앞의 11시의 위병교대식을 보고 다른 외국인의 켐코더가 sony, jrc, canon이라 내 것으로 찍지도 않으면서 폼을 잡았다. 삼성것도 있다고. 리카버스도언덕과 올림픽경기장을 보려고 언덕을 향하여가니 왠 1차 세계대전의 2열 비행기(나무와 철사로)가 있는 전쟁박물관을 보고 잠시 멈춰 서서 1방 찍고 부자들이 살 것만 같은 언덕길을 올라서 케이블카를 타니 왜 왕복을 끊지 않냐는 김k의 이야기. 멀면 내려 올 때 또 끊으면 된다는 내말. 언덕에서 바라본 고층빌딩의 최대가 10층 인 것 같고 유리로 지은 건물은 없는 것 같았다. 분지에 싸여 있는 것 같았고 가까운 곳에 항구가 있었다. (pireas - 지하철 9 정거장쯤) 내려 올 때는 걸어서 내려오고 시간관계상 올림픽경기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내려와서 bus를 기다리니 왜이리 안 오는지 20분을 넘게 기다리니 bus가 오는데 이런 1정거장을 지나쳤네 시간이 없는데, 짐을 찾아서 걸어서 역에 가니 시간이 남는 1:45분. 좌석예약의 칸에서 편하게 가는데 책에 있는 데로 왼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과연 왼쪽은 낭떠러지, 오른쪽은 벽을 가진 가느다란 선로를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좋은 코스를 잡아서 켐코더에 담으려고 켐코더를 여는 순간 아무것도 안 보이는 이런 황당이. battery 건전지로 갈아도 소리는 나는데 보이지는 않고, 자세히 보니 선반에 올려 놀 때에 작은 가방에 넣은 물통의 물이 흘러서 view-finder속에 들어간 것이 아닌가. 공든탑이 무너졌다. 겉을 딱는다고 무슨 소용이 있는가 드라이버 가져오지 않은것이 후회 스러웠다. 안보고 찍을까 하다가 그래서 좋은 곳 나오면 그냥 찍을까하고 한번 돌렸는데 찝찝하더라. 물 속에서 view-finder가 데미지를 먹을 것을 생각하니. 14:06출발에 15:36분쯤에 옆의 아주머니가 툭툭치며 고린도라고 하는데 고개를 돌리는데 와. 고린도운하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지상 20-30m위에서 기차가 지나가는 것 같은 것으로 생각이 들면서 폭 30m, 길이 5-80m 쯤의 직선운하가((주: 왼쪽만 봤슴))보이는데 사다리꼴로 보이더라((주: 새수대야같은 위가 길고 아래가 짧은 사다리꼴)) 15:46분쯤에(어쩐지 천천히 달리더라. 아마도 관광객을 위함인지, 다리를 위함인지 모르겠지만)도착한 역을 보니 고린도역. 이럴 줄 알았으면 일찍 와서 보는 건데. 책자가 너무 성의 없는 것 같더라 고린도를 지나면서 푸른 바다가 우측으로 바뀌고 농촌풍경이 펼쳐지는데 특이한 것은 대부분의 농촌 집이 2층이며 벽은 흰색, 지분은 분홍색이며 가로등은 기둥이 거의 없고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줄을 매달아 놓았더라. 오른쪽에 보이는 눈 덮인 산들을 보고 앞의 청년에게 물어보니 2000m급 파르나소스산 이란다. 내려서 중간에 만난 일행(서울산업대 화공과 4학년에 영국어학연수 끝내고 유럽여행 한다는 친구)와 함께 brintish에서 배편을 끊으니 김k은 좋은 것을 끊으라고 그러고. 내참. 일단 그 친구를 따라가서 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김k이 있는 곳으로 와서 물어보니 알고 보니 여기가 대리점. 아까 간 곳은 본지점이더라. 본 지점에서 물어 본것은 침대는 끝나고 좌석이 6000dr이며 공항세 1500dr이라는데 학생은 1500만 내고 프라스틱 의자에서 자기로 한 것이며(deck)-adriatila(이탈리아회사),hml은 그리스회사 격일로 출항함. adriatila의 팜플렛을 보고 잠시 헛갈려서 미 출항하는 날이 있는 줄 알았는데 따로따로 출항하니까 쉬는 날은 없는 것 같다. 대리점에서 물어보니 좌석(sheet)이 4500dr이란다. 역시 책이 맞구나. 부두에서 만난 덴마크친구와(37) out of africa 이야기며 직장, 결혼 이야기를 하고 나가다가 잠시시간이 있어서 전통음식도 생각이 나서 어떤 것을(수부랑키)시켰는데 다른 것을 권유하더니만 글쎄 다른 것을 주고 돈을 받는 것이 아니가. 사라다를 수부랑키와 바꿔준 것이다. 분명히 종업원이 서비스라고 했는데 도둑놈들. 좌석을 배정 받고 뒷문으로 나가는데 문이 열리고 (deck)사람과 다른 것이 없더라 처음에는 입장을 통제했으나 나중에는 보이지 않더라. 학생은 잠시 후 뒤로 가서 자고, 돈만 날린 것 같다. 화장실에서 세탁(펜티, 런닝, 양말)하고 옆자리에 놓고 말리고. 일요일아침이네. 아참 아테네에서 위병교대식을 보고 mc을 먹었고 그 옆의 우체국에서 우표를 사고, 앞의 판매점에서 엽서를 사서 서울로 편지를 보냈다. 받을 때는 다음주에나 될텐데.
4월19일( )
브린티시에는 예정보다 빠른 4시쯤에 도착했다. 그리스의 2군데를 들릴 때에 시간이 1시간씩 늦어져서 예상시간 17시를 넘겨서 도착할 것 같았는데 3시30분쯤에 브린티시라고 그러는게 아닌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했으나 정박, 하선하는데 30분이나 걸렸다. 시간의 개념이 무른것 같다. 브린티시 항구에서 역으로 걸어나오니 피자 가게가 많았고 더욱이 조각으로 파는 것이 빵집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자리에 앉으면 돈을 내야한다고 같이 간 동행한 친구가 이야기를 했다. 브린티시에서 3시간 이상을 기다리고 7시40분 기차를 타고 베네치아로 가려고 하는데 당초 예정된 시각에 예정된 플렛홈(3)으로 들어 오는것을 보고 타고 보니 역에 붙어있는 E940열차의 열차 NO배열이 틀렸다. 역시 그렇거니 하면서 1등칸을 잡아타고 빈자리에 앉아도 되냐는 질문에 먼저 앉아있던 여자와 남자가 OK라고 하는 것 같아서 김K을 불러와서 앉아있는데 아까 친구가(2등칸) 플렛홈에서 우리를 부르는 게 아닌가.
이차는 마드리드행 이라고, 앞차가 연착되었고, 우리 차는 2번홈에 들어온 것이란다. 허겁지겁 나와서 2번홈에서 타보니 진짜E940배열과 맞아떨어졌다. 쾌적한 자리에 앉으니 기분이 좋아지고 그날 1시까지의 다음다음(피사)의 일정을 잡았다. 맞은편의 여자는 개를 가지고 탔는데 10시간 동안 개가 가만히 있었다. 배에서 내리고 기차 타고 해서 오늘은 기차에서 쇼 한것 빼놓고는 별로 기억이 없다. 내일 아침에는 물의도시 베네치아다 어떤 모습일까. (추가)배 위에서 드라이버를 구해서 캠코더를 분해했다. 지중해의 햇빛에서 말리니 성공..
4월20일(월)
베네치아로 가는 1등석 기차 안에서 불편하나마 5시간을 자고 나니 몸이 개운한 것 같았다. 베네치아 메트로역에서 한번 서고 수면 위의 5m정도의 다리를 건넌 후에 베네치아SL 역에 도착했다 베네치아에서 짐을 1개에 5000L씩 맡기고 수상버스(1번)을 타고 굽이굽이 치는 수로를 따라서 갔다. 집과 건물 모두 물에 떠다니는 섬과 같고 사이사이를 여유 있는 사람들이 사는 것이었다. 수상버스는 GRANDE수로를 따라서 역 S자로 꾸부러져 있었고 강폭은 최대 25M쯤 되어 보였다. 수심은 대략 3M정도로 예측된다. 지금도 강가에서 말뚝을 박고있었는데 (정박용 배의 고정용) 말뚝의 길이가 5M정도 수면 위가 2M정도이므로 물의길이는 3M 정도 일 것이다. 산마르코 광장에서 본 바실리카산 마르코는 웅장하면서도 거대한 성당이었다. 성당 옆의 궁전을 거금을 들여서 들어 가보니 여러 가지 벽화와 천장화들이 있었으며 카메라로 몰래 찍었다. 두칼레 궁전에서 탄식의 다리를 건너면 죄인을 가두었던 감옥이 나오는데 정말로 어둠침침하며 탈출이 불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문의 두께가 15CM, 쇠창살의 간격이 15CM, 쇠의 두께가 보통 2CM 에서 4CM로서 탈출 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수상버스에서는 리알토다리를 건넜었고 나중에 어시장을 가보니 파장(2시)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오전에 수상버스에서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산타루치아역에서 산제레미아교회, 밴드라민, 칼레르지궁전, 페사로궁전, 카도르, 리알토다리, 시청사, 피사니궁전, 아카데미미술관, 쿠렌하임컬렉션,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교회, 산마르코대사원, 산마르코광장, 두칼레궁전, 탄식의다리를 보고 온 것이다. 수로를 따라서 다시 어시장까지 1시간을 걸쳐 왕복하고 3시30분쯤인가 피사행 기차를 탔다. 기차 안에서 이탈리아에서 우리가 지나온 기차요금을 역무원에게 물어봤다. 다음에 정산 할때 EURAIL과 일반요금비교를 해야겠다. 아테네-파트레는 없는데.
피렌체로 가는 기차는 자꾸만 귀를 자극하는데 아마도 산 위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3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피렌체, 큰 도시였다. 역내의 i 에서 17번 버스노선과 친구에게서 적은 약도를 보고서 유스호스텔로 가보았다. 생각 했던 대로 고풍스러운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올라 갈 때의 길이 인상깊다. 대 저택에 들어 온 것 같다. 좌측에는 캠핑장이 있는 듯했고 지하에는 영화관도 있었다. 복도의 콘센트를 테스터로 넣어보니 들어가지도 안고 (플러그간격이 커서, 테스터의 입구가 커서)고민이 많았다. 플러그를 내일은 잘라서, 전기가 나오는 곳을 물어봐야겠다. 월요일의 피렌체의 밤은 이렇게 끝이 난다.
4월21일(화)
아침7시 유스호스텔에서 눈을 떴다. 지난밤에 골아 떨어진 후 찝찝한 BATTERY 충전생각이 번득인다. 지난밤에 보아둔 세면장의 콘센트를 꼽아보니 충전이 되는 것이 아닌가. 어젯밤에 BATTERY가 5000L (DM, 알카라인,2개)이었는데. 지난밤에 오자마자 콘센트를 찾아 헤매었고 복도의 구멍에 테스터를 꼽아도 깜깜하더니 세면기에는 면도기 드라이용도로 전원을 넣어 두었다. 물론 가운데에 점등기가 있어서 전기가 오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침식사포함 24000 유스호스텔증이 없어서 나는 29000이었다.(딱딱한 빵 + 커피) 아침식사는 티켓을 가지고 가니까 딱딱한 빵과 커피 큰컵, 쨈, 버터를 먹고 CHECK-OUT하니까 9시30분쯤 되었다. 1,2층은 남자, 3층은 여자용 이었으며 가족실도 있었다.(가족실은 가족만 된다고 함. 2인,3인용). 매점은 아침에는 문을 안 열어서 사고싶은 BATTERY를 못 사고 그냔 짐을 쌌다. 걸어 내려와서 역으로 가는 BUS를 타고 역에다 짐을 2개를 1개로 만들어서 내 배낭만 5000에 맡기니 5000을 벌은 느낌이란, 와. 역에서 지도를 구하려고 하는데 김K이 맥도널드에서 지도를 구해다 줘서 좋았다. 역 앞 바로 앞의 산타마리아 노벨라교회에서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보고, 최후의 심판과 천국과 지옥은 아마도 옆의 미술관에 있는 것 같았다. 두오모를 향해가다가 북문과 남문에 성서의 유명한 이야기를 조각해 놓은 산 로만니 세례당을보고 이어서 두오모에 입장해서(무료) 천장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보았다. 장엄한 모습들 , 아울러 주변의 섬세한 조각과 그림이 감탄을 나오게 했다. 우피치 미술관은 불과 5분 정도 거리에 있으며 입장료가 12000L(1\=0.8L)이나 한번에 소수인원만을 입장을 시켜서 기다리는데는 피곤(1시간)했지만 쾌적한 상태로 감상 할 수 있었다. 역 디긋자모양을 하고있는 미술관으로 '보디겔리의 봄', '비너스의 탄생'과 레오나도르 다빈치의 '수태고지', '3현왕의 예배', 미켈란젤로의 '성가족'을 감명 깊게 보았다. 특이한 것은 중요한 것이며 유명한 것은 앞에 유리로 관람객의 고의적인 회손을 방지하고 있었다. 우피치미술관에서의 시간지체로 예정되었던 피티궁전과 미켈란젤로 광장을 취소하고 역으로 돌아와서 맥도널드 중간을 머고 시간 맞춰서 PISA행 기차를 탔다. 이 기차도 2등칸이 90% 인 것 같았고 1등칸은 2/3칸쯤 되었다.
피사역에 도착해서 역 우측의 버스티켓 사무소에서 BUS표를 구해서 피사행 버스를 탔다. 이 버스는 역과 피사 사탑을 일방통행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피사는 역에서 피사를 지나면 해안가가 나오는 바닷가근처였다.(지도에는 바다가 없으나 사탑의 너머에는 섬들이 있다. 바다인지 강인지 모르겠다). 버스는 사탑 바로 옆을 지나가며 우리는 입구에서 내려서 사탑과 두오모 또 세례당으로 들어가 보았다. 사탑은 정말로 장엄하였고 7-10도쯤 기울어져 있었다. 남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북쪽은 무거운 돌들을 쌓아놓았는데 바로 뒤에는 발굴작업을 하고있었다((추가:입장금지)) 세례당과 두오모를 함께 볼수 있는 티켓을 끊어서 보고, 세레당은 돌로 만들었는데 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다시 피사역으로 와서는 피사역에서 로마행 기차를 탔다. 기차역에서 산 물이 알고 보니 탄산수였다. 로마역에서 내려 서 지하철1호선을 타고 32번 BUS로 유스호스텔로 올라갔다. 밤 11시쯤 된 것 같았다. CHECK-IN하고 보니 12시 ,자자. 로마의 아침은 아떨까? BATTERY 충전은 세면장에서 OK!
4월22일(수)
로마! 아침 7시쯤 눈을 뜨자마자 BATTERY충전하느라 충전기를 빼 놓았던 관계로 시간이 0로 되어 버렸네. 아침에 확인을 하고는 길을 나섰다. BUS 32번, 지하철을 타고 `포폴로 광장에 내렸다. 경찰에 물어보니 뒤에 있었다. 포폴로 문을 통해 들어가 보니 정면에 커다란 탑이 있는데 탑에는 글씨와 그림이 조각되어 있었다. 산타마리아 디 미라콜리 성당과 산탈나리아 디 몬테산도 성당은 쌍둥이 성당이었고 내려가서 아우구스투스 제묘를 보았다. 유리로 4면은 둘러 쌌으며 거대한 돌로 조각을 해 놓았다. 확실히 대 제왕의 위용을 갖추고 있었다. 약간 헤메다가 스페인계단에서 로마의 휴일의 영화를 생각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앞에는 분수가 있으며 꽃으로 계단을 장식해 놓았다. 책의 지도를 보면서 트리비광장을 찾았는데 공사중 이었고 김K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니 다른 곳에 있다고 하더라. 옥신각신 하다가 물어보는데 내 책에는 트리버광장이 트리톤광장 위치에 표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참. 트리버광장의 분수는 아름답고 컸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분수에 동전을 뒤로 서서 던지고 있었으며 조각이 훌륭했다. BUS를 타고 공화국광장에 왔는데 김K이 아니란다. 광장은 공사중 이었다. 멕도널드를 먹고 다시 걸어서 산타마리아 마르게 교회를 거쳐서 언덕위의 산피에트로인 빈콜리 교회를 보고 옆의 대학 강의실도 잠깐 기웃거렸다. 돌아 내려오는데 보이는 콜로세움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우측에는 포로로마노, 좌측에는 콜로세움 정사각형의 기둥들이 어마어마했다. 입장료 10000L을 내고 들어가니 구멍이 뻥뻥, 기둥은 돌이나 계단과 중앙바닥이 나무로 해서 그렇단다. 바닥의 지하에는 죄수와 맹수가 있었다나. 팔라치노 언덕을 내려가서 BUS를 타고 진실의 입이 있는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딘교회를 찾아가는데 입구에 직경 1.2M쯤의 둥근 얼굴조각이 있다. 스위스주재원을 만나서 잠깐 이야기하고는 BUS를 타고 로마가 보이는 자니콜리 언덕을 올라가서 가리발디광장에서 미숫가루를 먹으며 로마를 보았다. 내려와서는 산탄젤로성을 돌아보고 바로 앞의 다리 위에 조각된 조각상을 보았다. BUS를 타고 다시 산 위에서 보았던 베니치아 광장으로 가서 빅토리오 에마누엘 2세 기념관의 위용을 보는데 규모에 비하여는 조각의 정교함과 질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조각상이 청동상으로서 녹물이 대리석 좌대를 지저분하게 하였다. BUS를 갈아타고 유스호스텔로 와서는 잠을 청한다. 충전도 해놓고. 가방정리도 하고.
4월23일(목)
아침에 일어나서 계산 좀 하다가 식사하고 역으로 갔다. 짐을 맡기고 바티칸으로 왔다. 산피에트로 광장의 원기둥이 주위를 압도하고 좌우의 분수대. 원형위에 각각 조각된 조각상들을 보았다. 산 피에트로 사원은 지금까지 본 사원에서의 압권이었다. 기둥은 4각 기둥이며 폭은 4M 쯤 되어 보였다. 특히 지하의 예배실과 무덤들은 더욱 볼만하였다. 스위스 위병의 근무도 특이했고 우측의 피에타, 자세히 보니 침울한 표정이 잘 나타내 주고 있었다. 바티칸내의 우체국에서 우표 1300, 카드 250으로 서울로 엽서를 보내고 바티칸 미술관으로 옮긴다. 미술관입장료가 15000 이다 바티칸미술관은 유인로를 따라서 1번을 돌면 끝이다. 시스티나 전시관이 전부인 것 같았다. 여러 개의 전시관이 있는데 입구에는 그 날의 전시관 마감시간을 알려놓았다. 그리스도의 변용을 나중에 가려고 하는데 못 간다고 하더라 중간에는 '아테네 학당'이 방 하나의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었으며 벽에 직접 그림을 그려 놓았다. 사람 하나 하나의 표정이 이체로왔다. 도자기와 철구들도 많았고 특히 복도와 천장은 대부분의 화려한 장식과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마지막쯤에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 있는데 설명을 들으면서 보았으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의미 있는 그림들 같았다. 불구덩이로 끌고 가는 무리들과 도와주는 무리들이 어울려서 장엄한 최후의 심판날을 생각나게 한다. 그 전시관의 천장에 있는 예언자 요나부터 예언자 사가랴까지의 특히 아담의 창조, 원죄와 낙원추방등은 섬세하면서도 감탄이 나오는 그림들이다. 지상 10M쯤 높이에 있는 그림들이다. 바티칸 박물관을 나서서 어제 사지 못한(8시에 문 닫은 슈퍼)-애걸해도 안 된다고 한 그 슈퍼)슈퍼를 전철을 타고 가서 기다리기 한시간(5시 OPEN인데 4시에 감) 후에 드디어 먹고 싶은 것을 사 가지고 역전으로 가는데 그만 탄산수를 샀지뭐람. 로마역에서 짐을 찾는 중에 한국사람이 와서 잘 지내느냐고 물어 보더라(T 445-2896, 30000 아침주고) 안됐지만 우리는 유스호스텔에서 24000-29000에 잤는데. 기차는 내일 9시쯤 도착으로 피렌체. 베네치아를 거쳐 빈으로 올라간다(비엔나라나)
4월24일(금)
비엔나의 아침이다(남부역도착) 오늘 잘까말까 망설이다가 안 자기로 결정했다. 저녁에 부다페스트로 가기로 하고 시간을 맞춰보니 저녁 8시차.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짐을 맡기고 1일 티켓을 사고 역에서 구한 지도를 가지고 나섰다. 지도는 버스. 시내전차. 지하철의 노선이 아주 잘 그려져 있었다. 시내전차 18번을 타고 서부역에 가서 20시 출발을 답사하고 지하철로 중심으로 이동하였다. 1번 시내전차는 시계방향, 2번은 반시계 방향으로 돌았다. 2번을 타고 한바퀴를 돈 다음 국회의사당, 부스크극장을 거쳐 포티프교회를 보고 38번 전차를 타고 슈베르트의 생가를 보았다. 2층 목조건물에 방이 10개쯤 있는 ㄷ자 건물인데 도로변의 2방을 기념관으로 쓰고 있었다. 마당의 나무로 만든 우물로 특이로 왔다. 쇼펜교회를 거쳐 페스트기념탑과 쇼핑가를 보고 벼룩시장도 보았다. 슈테판사원은 무료개방이며 특히 기둥이 *(연결된 둥글둥글 모양)형식으로 특이로왔다. 건축가가 설교대의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어서 조각한 것 이 특이했다. 국립오페라 극장 앞에는 연기자인 듯한 사람이 팜플렛을 돌리며 즉석 예약을 받고 있었고 극장은 2개이며 1개당 1500명은 들어가는 구조이며 가격차이가 컸으며 입석은 우리 돈 2000원 정도. 좋은 자리는 200,000원 정도로 부담이 없는 것 같았다.
모짜르트 기념상을 보러가다가 괴테동상을 보고 호프브르크 왕궁을 거쳐서 부르크공원안의 모짜르트 상을 보았다. 시간이 조금남아서 시내전차로 갈아타며 도나우 강을 보려고 가는데 강과 강 사이에 길다란 땅이 있었다. 지하철로 왕복한 후에 남부역에서 짐을 찾고 슈퍼에서 먹을 것 사고 서부역으로 가서 부다페스트행 기차를 탔다. 부다페스트행 기차는 23시쯤 도착했고 민박을 소개시켜주는 아주머니를 따라가서 하루를 묵었다. 8$, 10$을 이야기하는 것을 7$ + 7$ = 14$로 1박을 정하고 가서 잠을 청한다. 입구에는 자물쇠, 계단입구에 자물쇠, 집 입구에 자물쇠, 자기 방에 자물쇠 이렇게 4개가 필요했다. 집의 구조는 ㅁ(바깥에 ㅁ, 속에 또 ㅁ)이러했으며 벽, 복도, 계단은 전혀 손질이 안되어 있었다.
4월25일(토)
아침에 일어나서 8시쯤 충전을 하고 식빵에 쨈을 발라 먹는데 주인이 조그마하게 똑똑거려 보니 하루 더 묵으려냐고 물어보는데 우리는 빈으로 간다고 했다. 짐을 싸고 나오는데 수건과 카메라를 두고 나온 것을 나중에 알았다. (카메라에는 최후의 심판까지 찍고 필림을 갈아 넣었는데 비엔나 사진은 하나도 없게 되었구나)오스트리아에서 환전한 1500을 가지고 1일 이용권을 사고 지하철로 가서 역에다가 짐을 맡겼다. 지하철로 모스크바 광장까지 , 거기서는 마을버스로 어부의 요새로 가 보았다. 군역사 박물관은 창과 방패, 과거의 제복부터 현재의 무기까지 자세하게 전시를 해 놓았다. 포탄의 분해가 흥미로 왔고 각양 각색의 개인화기가 아주 알기 쉽고 자세하게 분해 전시하였다. 250fr.
아차시교회는 내부에서 4명쯤인가 가 연주회를 하고있었다 거리 곳곳에서도 악사들이 연주하며 돈을 받고 있었다. 어부의 요새에서 부다페스트와 다뉴브강을 보며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 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듯한 아파트촌과 수풀속의 고급스런 단독주택의 조화가 있어보았다. 마차시성당에는 촛불을 사기위한 헌금통이 있었는데 정말 짤랑짤랑 거리더라 부다왕궁을 보고 내려와서 그 옆의 요새로 올라간다. (슈퍼에서는 비닐 포장지도 돈을 받더라 \150정도)
27번 버스 더 높은 곳이므로 더 잘 보이고, 딱히 어디 갈 데도 없고 해서 요새는 높이 7-8m쯤 되어 보였고 요새에는 부다페스트가 거의 다 보이는 듯 했다. 1시간 쯤의 여유가 있어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영웅광장을 가서 7부족의 기마조각상을 보았다.. 세체니온천이 1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갈 수 있었는데 아쉬움을 남긴다. 서부->남부로 시내전차를 타고 내일 새벽에 다을 프라하로 떠난다. 시내전차는 단거리 구간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부다페스트, 빈 모두 효율적인 버스. 시내전차, 지하철을 운영하고 있었다. 체코로 들어올 때 여권검사후 체코땅인줄 알고 체코열차 비용을 지불하려고 물어보니 오스트리아 돈을(30)달라는 것이 아닌가 체코인줄 알아서 체코돈을 주었는데 화근. 다음에 온 역무원이 진짜!. 물어보는 것이 아닌데. 겨우 us$10을 지불하고 20체코돈을 거슬러 받았다. 표에는 28$를 내게 되어있었으나 1명분은 체코돈으로 지불하고 나머지는 자기가 환전해서 사용한 것 같았다. 영수증은 체코금액이 적혀 있으니까. 부다페스트에서 빈으로 올 때에는 풍력발전기가 대단 했다. 평지에 10개의 무리와 1개의 풍력발전기가 신기하게 있다.
4월26일(일)
새벽 3시30분쯤 자고있는데 차장이 지나가면서 프라하를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어젯밤에 시계를 알람으로 해 놓았는데 울리지 않았다. 어젯밤에 빨아논 양말을 허겁지겁 걷어서 (창에다 묶어놨다) 맨발로 내리니 프라하 praha-holesovice역. 역으로 나오니 information만 문을 열었고 지도를 사니 60. 대합실에서 잠을 자는데 6시쯤 아가씨경찰이 와서 여권을 보여 달랜다. 6시에 환전 창구가 문을 열어서 유스호스텔을 예약하려 했더니 팬션을 소개시켜주더라. 10시부터 open한다나. 360/인 이다. 우리돈으로 x 45 해야지.
환전하고 짐 맏기고 지도보고 거리를 나서는데 일요일이라 그런지 거리가 한산하다. 고풍스런 거리와 건물이 계속 이어지고 시내전차와 bus가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고 있었다. 도시는 푸른공원이 많았고 밝지 않은 도시이지만 가라않고 푸근한 기분을 주는 도시이었다. 동전전화기는 돈을 먹고는 내 밷지를 않았다. 7시 정도부터 짐을 맡기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자유이용권 70을 사자마자 검표원이 확인했으며 그 후로도 3번씩이나 수시검사를 했다. 내일 7시까지는 사용할 수 있었다. 부다페스트에는 하루이용권이었고 여기는 24시간 이었다. 지하철과 시내전차를 노선도를 보고는 칼레트다리 앞에서 내려 칼레트다리를 지나서 성십자교회, 유태인 묘지, 신구시나고고를 견학하였다. 신구시나고고에는 무릅과 엉덩이 부분의 의자가 달아있었다. 성미크라슈(성미크라유가 아님)교회를 거쳐 구 시가지 광장으로 나오니 벼룩시장이 열렸고 시계탑의 시계소리를 보러 사람들이 몰렸다. 11시의 시계탑에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시계소리는 시시했다. 하하하.
틴교회를 거쳐 화약탑을 올라가 프라하 전경을 보고 내려와서 숙소로 갔다. 숙소에서 여정을 풀고 다시 역으로 가서 짐을 가져 온 후 샤워와 양말을 빨고 식사 후 휴식. 5시쯤 지하철로 프라하성을 향해가서 프라하성을 보고 헤메다가 10시쯤 호텔로 와서는 출출해서 레스토랑(체플린)에서 흑맥주,스테이크(치킨)을 100 x 2 = 200 를 먹고는 잠을 잤다. 프라하는 물가가 지금까지 다녀온 곳중에서 제일 싼 것 같았다. 특히 남자나 여자나 눈썹살에다 구멍을 뚫어서 눈썹걸이를 한 것이 특이했다. 시내전차는 직선도로를 40-50km쯤, 회전에는 10km쯤 달리고 있었다.
4월27일(월)
아침에 일어나서 팬숀의 식당에서 빠을 먹고 설탕을 덜어오며 아가씨 팁으로 20동전을 주니까 안 받겠다고 하며 멋적어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이태리에서 만난 원주학생과 같이 나와서 프라하의봄의 기념광장과 묘지를 거쳐서 역으로 갔다. 바츨라프광장의 위령비에는 싱싱한 꽃들이 있었으며 어느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물병의 물을 주위의 꽃들에게 주고 넘어진 꽃들은 다시 심는 일을 하였다. 시민의 정성으로 이 조그많고 소박한 위령비가 지탱된다니 놀라웠다. 나무십자가와 사진2개 + 1개 . 다시 역으로 와서 베르린행 기차를 알아보며 체코내의 국경도시까지만 기차표를 끊었다. 145 x 2 = 290. 프랑스 프랑으로 환전하며 남은 것은 2원.
독일 드라센으로 들어가기까지는 강을 우측으로 끼고 갔었는데 국경근처에는 강 위의 절벽의 기암괴석이 아주 멋있었다. 잠시동안이라 생각했는데 약 10분이나 보였으며 주변에는 자동차가 많았고 행상들이 무척 많았다. 유명한 관광지라 생각된다. 바위가 삐쭉삐쭉 나오지 않고 뭉뚝하면서도 벼랑으로 생각된다. 못 짝은 것이 너무 안타깝다. 독일국경을 넘자마자 여승무원이 들어와서 시간표를 놓고가는데 이 시간표가 죽여 주는 것이 아닌가. 어느역에 도착하면 연결되는 기차가 언제, 어디로 가는 것이 표기되어 있었다. 베르린 도착전에 이 기차는 베르린의 외곽에서 (berin-schorefeld)서는것을 알았고 준비해간 책에 의하면 EURAIL이 공짜라서 내려서 한번 물어보니 안된다더라. 내참. 차표사무소에도 물어보니 안된다고. 책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며 표를 끊고 우리가 내일 떠날 중앙역으로 가는데 아불싸 중앙역에는 타도시로 가는 기차가 전혀 있지 않은가. 다행히 zoo,schohefeld,linchtenberg의 3개의 타도시행 열차 table을 보니 우리가 가야될역은 linchtenberg를 알았다.
안내에게도 물어보니 여기가 아니고 linchtenberg라며 시간표를 printing해 주었다. 중앙역에서 중국분식의 포장마차 같은데서 제일 비싼밥을 먹고 기운 차리고 zoo역으로 가서 책에 있는 (i)를 찾아가니 친절하고 자세하고 설명을 해 주었다. 각종 팜플렛이 자세하고 도보로 설명 하는 것이 맘에 들어서 마음의 결심을 한 후에 또한 유스호스텔을 구해달라니 커미션이 5DM 이란다. 50DM이하의 방을 구해보며 전산을 뚜드리는데 65DM + 식사 + 화장실 + 샤워라며 놀라더라 지도사고(1DM-작은것) 전철 타고 와서 호텔 찾느랴 30분을 허비하고는 호텔에 들어와서 샤워했다. TV도 있고 깨끗했으며 좋았다. 호텔은 펜션으로서 작은 레스토랑에서 손님을 받고는(컴퓨터로 연결) 옆의 아파트로 들어가서 열쇠를 주고 방을 잡아주었다. 방의 구조는 (둘러싸인 사각형 건물을 통과해서는 옆의 방)로 되어있었고 자동인식 전구가 설치되었다. 11시쯤 배미애에게 전화하니 목소리가 영 아니다. 2일째 독감이라나. 걱정이 무척된다. 나는 걱정 없는데 말이다. 목소리가 반갑다. 미안하기도 하고 새로운 힘이 솟는다. 감기가 걱정이다. KT카드는 한국통신에서 수동 pulse를 인식 못해서 안되어 데이콤을 이용했다. 동독지역은 전화상태가 안 좋은 것 같다.
4월28일(화)
오늘은 늦잠을 좀 잤다. 10시부터 도보로 베르린을 돌아볼 생각이어서 일부러 늦게 일어났다. 팬션에 붙어있는 식당에서 빵 + 고기 + 쨈 + 우유 + 커피를 부페식으로 먹고 하루를 사용하는 표(3.9)를 끊어서 zoo로 가서 라커에 짐을 맏기고 나오니 도보관광 설명하는 사람들이 몰려있어서 합류했다. 1인당 15DM, 일단 s-ban 을 타고 동베르린 쪽으로 가서는 대성당과 구미술관을 거쳐 운터덴린넨 거리로 와서는 국립오페라극장 뒤에 있는 도서관의 마당에서는 과거 유태인 서적을 불살랐다는 광장을 보았다. 아직도 바닥에 유리판을 깔아서 밑의 서고가 보이도록 시설해 놓았다. 부란덴부르크 문은 동쪽으로 조각이 되어있었고(위의 마차는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 밑으로 3차선쯤이 통행이 이루어 지고 있었다. 공사중인 제국의회의사당을 거쳐 다시 s-ban 을 타고 1정거장을 내려왔는데 걸어서 얼마 안가니 장벽의 일부가 보였다. 장벽은 (니은-1.5 m ,1.5m) 쯤으로 2중으로 되어 있었으며 거리는 가까운 곳은 거리, 먼 곳은 아주 멀리에 있었다. 두께가 20cm 쯤의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었다. 지금은 위에 둥그런 커버가 있는데 처음에는 철조망이 있었으나 나중에 변경을 했다고 했다. check-point c 라는 데서 설명자는 차 트렁크에 사람을 실어 나르고, 심지어는 차를 전속력으로 통과했으므로 2주 후에는 도로에 쇠못을 설치했다고 했다. check-point c 에 가기 전에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장벽과 건물(4층쯤)이 있었는데 건물에서 갈고리를 던져서 탈출했다고 했다. check-point c를 지나서 해산을 해서 우리는 공수기념관으로 가봐서 빵을 먹으려 했으나 공수기념관을 찿지는 못했다. 그 대신 베르린 비행장의 홀에 가보았다. 지금도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것 같았다. 2층 bus를 타고 전승탑과 소련전승기념비를 보고 마지막으로 TV 송수신탑 근처의 분수대와 시청사, 니콜라이교회를 보았다. 분수의 모양은 기기묘묘했으며 여자, 아이와 상반신은 남자에 하반신은 물고기인 조각도 보았으며 고기를 끈으로 엮은 모습, 어망의 모습 등이 재미있었다. 그 근처에서 흑맥주를 500 + 300 cc 먹고는 (유리잔 값이 3 DM) 가방 찾으러 가서 카이저 빌헬름교회를 보고는 (경각심을 위하여 복구하지는 않았지만 내부에서는 (어젯밤에) 예배를 보고있었다).
통닭 사다가 줄 서있는 줄도 모르고 질긴 것을 샀다. linchenberg역으로 와서는 malmo를 거쳐 스톡홀롬 가는 기차를 기다렸다가 23:14분에 타고 간다. 기차는 특이했다. 방도 있었으나 가운데에 탁자가 있는 15명 정도의 의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베르린의 지하철은 열차가 정차하기 전에 스위치를 눌러 문을 열고 있었고 장애자, 자전거를 거의 마음대로 탈 수 있었다. 역의 80 % 가 장애자 편의시설을 해 놓았고 열차는 자전거를 태울 수 있는 기차도 있었다. 저녁에 배미애에게 전화하니 목소리가 좀 나아졌다. 어쨌든 미안하다. 나도 빨리 가고 싶은데. 어떡하나 일단 투자한 것 본전을 뽑아야지.
4월29일(수)
말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자고 있는데 어쩐지 역에 오래 정차한다 싶었는데 너무 오래 있는 것이 아닌가. 창 밖의 화물열차가 계속 그대로 있었다. 기차가 배속으로 들어간다던데 하면서 기차에서 내려보니 진짜 배 안이었다. 그리스 -> 이태리로 올 때에 배 밑으로 화물차들이 무수히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진짜로 기차가 들어간다니 놀라웠다. 6-8량 짜리 가 1줄로 들어갔고 옆에도 3-4개의 화물열차가 있었다. 배 위로 올라가 보니 그리스 -> 이탈리아에서 탔던 것과 비슷한 규모의 배였다. 오전에 배가 정박한 줄도 모르고 기차가 천천히 움직여서 보니 배에서 기차가 나가고 있었다. 말머역은 중간역 규모쯤 되어 보였고 바로 그 자리에서 기차를 갈아타게 되어있었다. 대합실은 미용실, 취침실, 목욕실, TV등 편의시설이 어느 대합실보다 정성을 다해 놓았고 깨끗했다. 복지국가라는 이미지가 크게 와 다았다. 스톡홀롬으로 가는 다음기차를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예약표를 보면서 빈자리를 이야기 해 주는 것이 아닌가. 참 친절하지. 기차는 우리의 새마을호처럼 고속이면서 편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X-2000이라는 열차였다. 스톡홀롬에는 점심때쯤 도착하였다. 스톡홀롬에서 1박 하려는 계획을 바꾸어 곧장 핀란드로 저녁 배편으로 가기로 계획을 바꾸어 스톡홀롬역에서 실라라인 선착장으로 물어갔다. 책에서 본대로 좌석 없이 예약을 했고 6시까지 오라는 것 이 아닌가. 지금시간 3시30분. 불과 2시간30분밖에 안 남았다. 라커와 씨름하기를 30분, 이제 남은 시간은 2시간. 지하철을 타고 감자스탄이라는 좁은 중세시대의 건물사이를 지나서 대성당, 왕궁에 도착해서 물어보니 내일이 국왕의 61번째 생일이란다.. 경비원은 젊었고 친절했다. 구스타스3세상과 대성당 밑의 우물(옛날에 왕이 자기를 반대하는 귀족 수십 명을 불러다가 목을 쳐서 버렸다는 그 우물)을 보며 중간의 골동품상도 보며 다시 실자LINE(시리아로 읽는다 j=야)으로 와서 fetival호를 타고 트루크로 간다. 배는 무지하게 컸으며(나중의 헬싱키 -> 스톡홀롬의 바이킹선사의 마리엘나호(MARIELLA)) 면세점, 사우나, 바, 디스코, 환전소등 없는 것이 없었다. 우리는 의자에 앉아서 졸다가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옆에 앉은 외국인이 짐 좀 봐달라는 이야기에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4월30일(목)
새벽으로 넘어가는데 5/1일이 MAY DAY로서 그 이브인 4/30 오늘이 아주 큰 행사를 한다고 한다. 투르크의 2만 명 정도가 거리를 행진한다고 하며 헬싱키로 간다고 하니까 친절하게 헬싱키 지도를 카피하여 위치를 설명 하는게 아닌가. 이럭저럭(자기전공이 국제경영이라며 구조조정의 REPORT를 읽고있더라, 우리의 실업률이 8%라 하니까 놀라며 자기네는 40%라고 하더라. 성추행 이야기도 하면서 (그때 국내에서 성추행 규제법이 시행되어서 너희는 어떠냐고 물어봤는데 자기네도 엄격하다고 해서 다소 의아했다 -- 나중에 씀)잠깐 눈을 붙이고 떠보니 아침이네 배 위에서 해 뜨는 것을 켐코더로 찍고는 서둘러서 하선. 8시쯤 도착한 배는 8시20분에 트루크항 바로 앞에서 트루크를 떠나며(기차) 헤싱키까지는 2시간 이 좀 넘게 걸렸다. 핀란드는 넓은 대지에 적은 사람임을 느끼듯이 집이 드문드문 있었고 중간 중간에 호수가 많았다. 헬싱키에 도착해서는 칭얼대는 김K를 달래며 (잠을 못 잤다고, 어떻게 길에 누워 자냐고)유스호스텔을 예약하니 4시에 문을 연다나. 4시까지는 멀고 해서 라커에 짐을 맡기고 김k이 책에서 본 시장을 따라가서 요기를 하고(죽 같은 것과(카레)감자와 생선을 썰어 끓여서 만든 죽 같은 것) 페리를 타고 수오맨다린 요새를 보았다. 성 위에 2중, 3중의 성채를 쌓았고 해안 쪽으로는 8-9 inch의 대포를 배치하였으며 대포와 대포사이에는 지하 진지를 파 놓았다. 성채는 여느 요새와는 달리 상륙전의 용도보다는 함포사격용 같았다. 군대 군대의 입구에는 개방된 type으로서 좌, 우에서 침입을 방어하게끔 하는 구조였다.
돌을 높이 견고하게 쌓았고 성곽 내에도 군인 및 물자 수송용 연결통로가 잘 되어 있었다. 요새를 보고 오니 시장이 열리는 그곳인 카푸아광장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중앙의 여인의 분수대 옆에서 번지점프를 하려고 고가 크레인 2개가 설치중 이었으며 나중에 보니 분수대의 여인상을 닦아주는 행사를 하였다.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을 뒤로하고 (가면과 머리 스프레이, 색끈, 풍선)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이 무지무지 많았다. 짐을 찾고 올림픽경기장 옆의 스타디움유스호스텔에서 잠을 청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축재를 참관하는 것 같았다. 요새에서는 젊은이들이 술병을 들고 몰려와서는 술을 먹고 일부는 일광욕도 하곤 했었다. 축제기간에 온 것이 기분이 좋았고 축제를 알려준 26세의 젊은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5얼1일(금)
지난밤에는 피곤해서
---> text도 많아지니까 글쓰기 error 가 납니다. 더 보시려면 첨부file 980616.txt 보세요^^
9.5년전에,, 대학4학년때 7,8학기 등록금내주고- 돈주고-장가가게해준 삼성전자를 떠나며 동료1명과
유럽배낭여행을 갔었습니다. 10일정도 준비했고, 37일동안 반은 기차에서 반은 숙소에서 잤습니다.
살 빠지더군요, 6-7kg쯤. 1984년 12월26일 삼성전자 입사, 1998년 3월31일 명예퇴직. 퇴직금으로
아파트 잔금주고 1998년 11월 내집장만. 삼성전자가 만든제품은 좋습니다.
여행기는 맟춤법만 정정했습니다.
1998년4월16릴-1998년5월23일. 김k는 같이간 동료, 배미애는 내 처.